잡동사니

천산대학(千山大學)

HL5FXP (玄心) 2006. 2. 17. 14:35

천산대학(千山大學)

오늘 아침 조간을 뒤적이다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천산대학...

[조용헌 살롱] 千山大學
▲ 조용헌

중년(中年)의 나이가 되면 들어가 볼 만한 대학이 하나 있다. 그게 바로‘천산대학(千山大學)’이다. 자격 제한도 없고, 4년제도 아니고, 등록금도 없는 대학이다. 중년에 시작해서 두 다리 성할 때까지 1000군데의 산을 올라가 보는 것이 천산대학 커리큘럼의 전부이자 핵심이다. 천산대학을 졸업하면 인생에 태어난 보람 하나는 건지지 않겠는가.

한국은 등산하기에 천혜(天惠)의 조건을 갖춘 나라이다. 국토의 70%가 산이다. 이 70%도 중앙아시아나 티베트처럼 4000~5000m 높이의 고산(高山)이 아니다. 또 미국의 로키산맥처럼 인간을 압도하는 산도 아니다. 인간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기에 적당한 높이의 산들이다. 세계에서 한국처럼 인간이 오르내리기에 적당한 높이의 산들이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나라는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산들은 동식물이 살고 있고, 계곡에 흐르는 물을 사람이 마셔도 괜찮은 수질(水質)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중앙아시아처럼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민둥산도 아니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서 경관까지도 수려한 산들이다.

한국에서 500m 이상의 산들을 추려보면 대략 4400군데 정도 된다고 한다. 올라가 볼만한 산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외향적인 양(陽) 체질의 사람은 지리산(智異山)과 같은 육산(肉山)이 좋다. 육산은 험준한 바위가 별로 보이지 않는 산이다. 사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있다. 양 체질은 음산(陰山)인 육산과 궁합이 맞다. 반면 내성적인 음(陰) 체질의 사람은 설악산(雪嶽山)과 같이 바위가 많은 골산(骨山)이 좋다. 바위에서 방사되는 골기(骨氣)를 마시면서 마음 속에 맺혀 있는 답답증을 풀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음 체질은 양산(陽山)인 골산과 궁합이 맞는다.

산들마다 풍기는 이미지도 각기 다르다. 영암의 월출산(月出山)은 평지에 홀로 우뚝 솟아 있어서 외로운 스라소니와 같고, 합천의 가야산(伽倻山)은 문무를 겸비한 잘생긴 미남이다. 강원도 오대산(五臺山)은 부잣집의 후덕한 안방마님 같고, 속리산(俗離山)은 숨어사는 은둔군자와 같다. 계룡산(鷄龍山)은 제갈공명과 같고, 삼각산(三角山)은 창검을 들고 있는 장군과 같다.

신선(神仙)의 길이 따로 없다. 천산대학에 입학하는 날이 바로 신선으로 입문(入門)하는 날이 아니겠는가.

<출처 : 조선일보 2006년 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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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조용헌

196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민속학을 전공하여 불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8년간 한·중·일 3국의 600여 사찰과 고택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재야의 수많은 기인, 달사들을 만나 교류를 가져왔다. 이들 <방외지사>와의 만남을 통해 천문, 지리, 인사에 관한 강호동양학의 3대 과목을 한국 고유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지금도 강호를 유람하고 있을 저자는 자신을 문필가로 불러달라면서 그 내력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문필가가 되었다. 타의 가운데 상당 부분은 조상의 묘자리와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 선대의 묘를 문필봉 앞에다 썼는데, 문필봉에 묘를 쓰면 그 후손가운데 문필가가 나올 확률이 높다. 그래서 문필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에서 매우 오랜 전통을 지닌 직업관이기도 하다.” 저서로 『조용헌의 사찰 기행』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