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청사초롱-후지모토 도시카즈] 서울 찬가

HL5FXP (玄心) 2011. 7. 11. 23:30

 

          ▲ 2011년 3월13일 고교동기 산악회 '올라가줌'의 제113차 정기산행 겸 2011년도 始山祭 - 북한산 원효봉에서

 

 

 [청사초롱-후지모토 도시카즈] 서울 찬가

“북한산은 최고의 보물… 서울의 매력 더 발견해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싶어”

 

 

일본에서의 37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마치고 서울에 온 게 2009년 가을. 어느덧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른바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때 한 선배가 나에게 이런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제2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체육시간과 예술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라고. 매일 시간에 쫓기고 술을 벗으로 삼는 방송인의 생활은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선배의 어드바이스에 따라 내가 서울에서 시작한 체육수업의 하나가 등산이었다.

 

첫 등산은 북한산이었다. 북한산의 존재는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실제 올라가니 실로 아름다운 산이었다. 대도시 서울에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산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북한산의 가을 풍경을 만끽하면서 한국인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등산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 이에 대해 나는 늘 하나의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일본에서 등산(登山)이라는 말은 후지산처럼 험하고 높은 산에 올라갈 때 쓰는 말이다. 도쿄의 다카오산(高尾山)은 표고가 599m인데 여기에 올라가는 것을 등산이라고 하지 않고 야마노보리(山登)라고 한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등산은 어느 쪽일까? 높고 험한 산에 올라가는 한국인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겠지, 일본식으로 말하면 야마노보리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산에 올라가고 나서 내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것은 야마노보리가 아니라 틀림없이 등산이었다. 이어서 올라간 도봉산도 등산이었다. 나는 경희대에 가까운 회기동에 살고 있는데 지하철 1호선을 딱 20분만 타면 도봉산 기슭까지 갈 수 있다. 이렇게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야마노보리가 아니라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산이 있는 수도는 세계에서도 서울밖에 없는 게 아닐지?

 

내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74년이었다. 그리고 취재 때문에 몇 번이나 서울을 찾았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 당시 내 눈에는 어느 산도 비치지 않다가 일단 눈이 트이고 나니 서울을 둘러싼 산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경종의 묘소 의릉이 있는 이문동의 내 단골 커피숍에서도 삼각산이 보인다. 차경(借景)이라는 일본말이 있다. 멀리 보이는 웅대하고 아름다운 산의 모습을 살려 만든 정원을 차경원(借景園)이라고 하는데 이 커피숍은 말하자면 차경커피숍인 셈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산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후지산이다. 도쿄의 NHK 라디오 스튜디오는 후지산이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날씨가 좋고 후지산이 잘 보이면 아나운서들은 꼭 그 이야기부터 아침인사를 시작한다. 멀리서 보는 북한산도 후지산 못지않게 아름다운데 서울의 여의도에 자리잡은 KBS 스튜디오에서도 북한산이 보이는지?

 

한 달 전 일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분들이 서울에 놀러와 좋은 곳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때 바로 떠오른 것이 서울의 산이었다. 내가 안내하고 싶은 곳은 북한산과 도봉산이었지만 장비가 필요하다. 시간도 걸리고 체력이 필요하다. 대신 내가 안내한 곳은 낙산이었다. 낙산의 존재는 나도 잘 몰랐으나 매주 일요일 대학로에서 자원봉사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는 여대생들이 알려주었다. 낙산은 성벽도 멋이 있지만 거기서 보는 북한산이 일품이었다.

 

나를 따라온 일본 친구들은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옥탑방의 실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감격했다고도 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류 드라마의 열렬한 팬들인데, 드라마 주인공들이 사는 옥탑방이 그렇게 신기했던 것이다. 한류붐에 대해서는 피상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다. 한·일 우호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더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는 하지만 나도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나 많다. 북한산 도봉산뿐만 아니라 서울의 매력을 더 많이 발견해 일본인들에게 알리고 싶다.

 

후지모토 도시카즈(경희대 초빙교수·전 NHK 프로듀서)

 

[출처] 2011.7.11 국민일보


[참고] 2011.3.13 북한산 원효봉 시산제는 여기를 http://blog.daum.net/hl5fxp/18348608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