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행/충청지역

낙영산-도명산(공림사- 낙영산-마애삼존불-도명산-화양계곡) 05년 2월6일

HL5FXP (玄心) 2005. 2. 6. 14:48

산행일자 : 2005년 02월06(토)
-,2005년도 제6차 산행

산행지 : 충북 괴산군 낙영산(落影山/684m) - 도명산(道明山/643m)

산행자 : HL5FXP 외 37인(구미 싸릿골 산악회 버스 편승)

산행거리 : 약 9.3km

산행코스 및 시간 (산행 시작 0911 - 산행 종료 1321)
-,0700 : 구미 원호농협 앞 버스 출발
-,0911 : 공림사 입구 도착 (공림사 +1.0km) / 괴산 +33km/+청천 +11lm)
-,0918 : 낙영산 공림사 일주문
-,0926 : 공림사(公林寺)
-,0959 : 능선안부/괴산 미륵산성 유적지 (공림사 -1.3km/낙영산 +0.5km/도명산 +1.4km)
*여기 안부에서 낙영산은 우측 비알길로 진행 해야 되며 내리막길로 직진시는 도명산으로
바로 가게 됨.

-,1012 : 낙영산 정상(해발 684m 표지석 有/관련 산행지도에는 681m로 표기)

-,1040 : 속리산 국립공원 119 표지목(08-03)통과
-,1102 : 공림사 -2.7km / 도명산 +0.2km 이정표 / 마애삼존불
*이 이정표를 끼고 비알길로 바로 오르면 도명산 정상이고 우측으로 10m 정도 직진하여야만 비로서 충북유형문화재 140호

마애삼존불을 볼 수 있음.
**사후 확인 결과, 이정표의 모호함 때문에 싸릿골 산악회원 거의 대부분(99%)이 마애삼존불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쳤음.

-,1120 : 도명산(해발 643m)

-,1204 : 도명산 - 화양계곡 하산 길 도중에서 1226까지 중식
-,1236 : 화양계곡 직진/능운대 갈림길  (속리산 국립공원 119 표지목 07-08)
-,1255 : 화양계곡 입구(화양3교) 도명산 +3.2km 이정표 有
-,1301 : 화양서원 묘정비
-,1321 : 국립공원 속리산 화양동 매표소/주차장 (산행 종료)  

HL5FXP 2005/02/14

산행 들머리인 공림사 입구에서부터 낙영산 정상을 거쳐 도명산까지 여유있게 걸어도 2시간이 남을 정도.
다시 도명산에서 산행 날머리인 화양동 계곡까지도 쉬고 또 쉬며 걸어도 역시 2시간이면 여유만만.
산행 소요시간이나 난이도를 감안 시 가족산행 내지 원격지에서 출발하는 단체 산행 팀의 산행코스로 추천할 만한 그런 곳.

 

 

 

 

 

 

 

                      낙영산 정상석 옆에 같이 서 있는 사람은 宗氏(原州 元氏)인 원종무 라고 싸릿골 산악회의 단골(역시 나 처럼 비회원/버스만 편승)

 

 

 

 

 

 

 

 

HL5FXP 2005/02/17

萬折必東(만절필동) 昭敬大王御筆(소경대왕어필)
華陽書院(화양서원) 元孝大王御筆(원효대왕어필)

이 정도로 남겨 놓을 낙서면 분명 그 뜻이 깊을 터 그래 도대체 이게 뭔 의미인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소경대왕(昭敬大王)
옛날에는 임금이나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 등이 죽으면 시호(諡號)라는 이름을 나라에서 내렸다고 합니다.
소경(昭敬)은 바로 우리가 선조(宣祖)라 부르는 조선조 제14대 왕의 시호랍니다.
참고로, 선조 임금의 공식적인 시호는 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顯文毅武 聖睿達孝大王

                                            (선조소경정륜입극성덕홍렬지성대의격천희운현문의무성예달효대왕)

다음, 만절필동(萬折必東)
이건 流流江河 萬折必東(유유강하 만절필동)에서 유래된 말로 유유히 흐르는 양쯔강(揚子江/양자강)과 황허(黃河/황하)는

만 번을 굽이쳐 돌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른다.
따라서, 만절필동은 절개와 지조를 의미하는 말 이라고 하는군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게 된 상황에서 중국의 명(明)이 군사를 원조해서 간신히 나라(조정)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된 것을 임란후의 조선시대에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했다는 데 그런 재조지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시 선조 임금이

어딘가에 남겼다는 글이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蕃邦)이라고 합니다.

화양서원(華陽書院)
앞에서도 언급됐던 노론(老論)의 영수 우암 송시열(宋時烈)을 제향 한 서원으로, 1696년(숙종 22년)9월 사액(賜額)을 받은 서원입니다.
-,서원이란 조선 중기 이후 명현(明賢)을 제사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전국 곳곳에 세운 사설기관(私設機關)을 말 하는데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궁중에 있던 서적(書籍)의 편수처(編修處)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에서
유래한 것으로, 송나라 때 지방의 사숙(私塾)에 조정(朝廷)에서 서원이라는 이름을 준 데서 학교의 명칭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액이란 임금이 친필로 쓴 액(額/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학전(學田)·노비(奴婢)를 급부(給付)하면서 이들 토지와 노비에 대한

면세(免稅)·면역(免役)의 특권을 내리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 말로하면 국가공인 면세 사립학교 증명서라고나 할까요.

마지막으로, 원효대왕(元孝大王)
원효대왕은 우리가 숙종이라 부르는 조선조 제19대 임금의 시호에서 나온 것으로 공식적인 시호는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

元孝大王(숙종현의광륜예성영열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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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야 어쨌든 선조 어필인 만절필동 과 숙종 어필이라는 화양서원 두 개 모두 후세의
누군가가 바위에 새겨 넣었을 텐데 요즘 광화문 현판 얘기와 겹쳐지는 것 같아 좀 그렇군요.
산에다는 낙서하지 맙시다. 후손한테 깨지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