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금오산성중수송공비(前面) 아래, 금오산성중수송공비 전면 상단부 비문(碑文) (*비문을 잘 보면 조선말 고종의 아버지였던 "대원위 합하" 라는 글자도 보인다)
휴일 다들 잘 보내셨는지? 영재, 철우, 창훈은 변함없이 산행을 한 것 같고 다른 친구들은....
나도 일요일에 뭐 특별한 행사(결혼식 참석?)가 없는 이상 금오산으로.... 좀 부지런하면 대구. 경북 일원의 다른 산도 갈 텐데 일요일이라고 늦장 부리다 보면 보통 11시. 그러니 차 몰고 최소 1시간 정도는 가야할 만한 곳에 있는 산을 가기에는 무리. 여름 산이 아닌 명색 겨울 산인만큼 내려올 시간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반면, 금오산은 해발 1000여 미터에 가깝지만 그래도 동네 뒷산이나 마찬가지이다 싶으니 안심.
어쨌거나 어제도 동네 김밥 집에서 김밥 도시락 하나 3,000원 주고 사서 배낭에 넣고 생수 1병, 스포츠 음료 1병....윈드쟈켓, 무전기, 카메라.... 마지막으로 혹시 라도 눈 내릴 것을 대비 아이젠까지.
정확히 1125에 산행을 시작했는데 지난번에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 장만한 지팡이 (3단 접이식)가 영 말썽이다. 3단 접이식인데 이게 빠지지를 않네.... 아까운 시간은 흘러가고, 에라 내 언제부터 지팡이를 짚었더냐.
한발 두발 발을 띄어 놓기 시작하는데 유난스레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버스로 단체 산행을 왔나 가슴에 뭐라고 명찰을 단 남녀 한 부대 가 올라오고 있다. 어림으로도 한 팔십 여명은 족히 되 보인다. 어이구 저 인간들 한 무더기와 그 좁아터진 할딱고개 오르려면 꽤나 부딪겠다 싶어 발걸음을 조금 늦추었건만 워낙 대 부대라 그런지 영 진도가 안나간다.
에라, 그냥 휩쓸려 같이 가는 거지 했는데 아니나 달라 할딱고개 초입부터 장사진 이 펼쳐져 있다.
시각이 시각인 만큼 부지런 떤 사람들은 이미 내려오기 시작한 시각인지라 그 좁고 비탈진 고갯길에서 뒤 엉킨 것이다. 기본적으로 올라가는 사람한테 우선권이 있다 지만 내려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보면 끝없이 줄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고. 할 수 있나, 동네 뒷산인 만큼 길 아는 이점을 살려 산불예방 차원에서 ‘입산금지’ 라고 써 붙인 샛길로 날라야지(요즘 같은 건조기에 입산금지 구역으로 다니면 과태료 20만원 이던가) 이래저래 정상에 도달하니 그 와중에도 그 명찰(xx 소백산악회)붙인 대부대 병력 이 꽤나 올라와 금오산 ‘헬리포트’를 거의 메우다시피 했는데 본때 있게 버너 키고 찌개를 끓이는 배짱족도 눈에 보인다. 저 인간들 여기가 명색 도립공원이라고 순찰하는 '총각’(공익근무요원)들이 자주 돌아다니는 곳인데 저러다 혼나지.
저기서 같이 밥 먹자니 달랑 혼자라 아무래도‘개밥에 도토리’처럼 보일 듯싶어 '도토리'가 자리를 양보(?)하기로 했다. 잘 있어라, 산에서 불질하는 ‘x 밥’들아 ‘도토리’ 간다. 지난번에 다녀간 친구들은 알겠지만 정상(현월봉)의 안테나들을 옆으로 하여 서북쪽(금오동천 방향)으로 조금 이동가면 미군들이 구축 해 놓은 또 다른 ‘헬리 포트’가 있고 여기는 한적 그 자체이다.
일행 없이 혼자 산행 할 때는 자기 페이스에 맞추어 알아서 할 수 있어 그 점 아주 편하지만 사실 인적도 없는 곳에서 혼자 식사할 때는 별로인지라 그간 ‘버들’이랑 와이프를 몇 번 꼬셔 보았지만 별무 신통이다.
찬 도시락에 물 한 병 다 비우고 슬슬 내려갈 생각을 하니 앞의 그 대부대가 영 마음 에 걸린다. 그럼 오늘은 금오동천으로 내려가 봐, 그런데 그쪽은 교통도 불편하고 더욱 차를 금오산 저수지 앞 주차장에 세워 놓았으니....잠시 갈등하다 등산 가이드 에 분명 현월봉에서 금오정(金烏井)이라는 곳을 거쳐 성내(城內)로 해서 대혜담 (大惠潭)으로 빠지는 코스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에라, 가다가 길 못 찾으면 그냥 금오동천으로 빠지지 하는 마음으로 그런대로 사람 다닌 흔적이 완연한 산길로 내려가길 한 20여분 남짓, 멀리서 보아도 유난히 눈에 띄는 금속철책이 하나 있기에 가까이 가보니 그 안에는 이수(螭首)에 이끼가 더럭하니 낀 제법 고풍스러운 비석이 하나 들어앉아 있다.
고풍스러운 나이 값을 하는지 비석은 온통 한자(漢字)로 도배를 해 놓았는데 몇 자 아는 자로 이리저리 꿰어 읽어(?)보니 내용은 몰라도 대충 무었을 기념하는 비석인 지는 짐작은 간다. 금오산 오르다보면 금오산성의 내력(來歷)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에 써 있기를 금오산 어딘가에 금오산성중수송공비(金烏山城重修頌公碑)라는 게 있다 했는데 이게 바로 그것.
비석을 돌아 내려오니 바로 너른 분지가 펼쳐지는데 산행 안내판이며 산행 표식기 등이 서넛 눈에 띈다. 현재 위치가 금오정(*금오산관리소에서 경고판을 붙여 놓길 여기 이 샘물은 대장 균 오염과 탁도가 기준치 이상이므로 절대 음용수로는 금지)이고 정상을 등지고 섰을 때 왼쪽으로 가면 금오동천, 분지 건너 편 정면의 야산을 타고 오른쪽 능선 으로 오르면 금오산 제2봉인 “칼다봉”으로 해서 자연학습원으로 가는 길, 그저 오른편 산길로 쭉 빠지면 대혜담(대혜폭포 윗부분).
안내판과 지형을 보니 머리 속에 확실하게 지도가 그려지는 게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겠는데 칼다봉 길로 돌아가면 능선 타는 재미는 있겠지만 시간도 제법 걸릴 것 같고 혼자서 너무 청승 떠는 것 같아 오늘은 역시 초행인 대혜담 길로.
분지(城內)를 지나 계곡 사이로 난 산길로 접어들어 한 10여분 가니 주변 풍경이 확 변하는게 어디 심심산천이라도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아니 금오산에 이런 깊은 계곡이 있었네?
구미소방서에서 부착 해 놓은 구조지점 안내판(금오산 성내 코스 xx번 지점)이 잊어버릴 만 하면 한번 씩 나타나는 걸로 보아 금오산 정상(正常)루트가 분명한데 어째 이리 사람이 없는지?
불과 1시간 여 전만 해도 북적대는 사람들 틈에 있다 지금은 앞 뒤 아무리 보아도 사람 하나 없는 낙엽 두툼하니 깔린 산속 소로(小路)를 그저 자기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렇게 산길 걷기를 한 시간 반 남짓, 금오산 유원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속세 로 들어가는 관문이 코앞이라는 얘기다. 사람 인(人)변에 뫼산(山)이 붙으면 바로 신선 仙, 사람 인(人)에 계곡 곡(谷)이 붙으면 풍속 俗. 1주일에 한번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俗人에서 仙人노릇 하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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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글 올리고 나서 혹시나 싶어 인터넷 뒤지니 역시 나온다. 금오산성중수송공비 http://geumo.gumi.go.kr/ma44.htm
성안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 이 비석은 산의 경사면을 깎아 평탄한 부지를 조성하고 사방에 1∼2단의 석축을 쌓아 세운 것이다.
부지의 크기는 420cm×510cm 이며, 비석은 부지의 가운데에 북향으로 서 있는데 장방형의 비석받침에 팔작지붕형의 碑蓋를 갖추고 있고 크기는 높이가 150cm, 폭 이 62cm이며 두께는 26cm로 碑身의 앞뒤에 모두 23행 643字가새겨져 있으며, 글씨는 題額만 전서(篆書)로 하고 나머지는 행서(行書)로 되어 있다.
이 비석이 세워진 정확한 연대는 확인 할 수 없으나 내용상 고종 5년(1868)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석의 내용은 " 고종 5년에 承旨 李容直이 城에 올라 그 성의 허물어진 상황을 대원군에게 보고하였고, 이에 대원군이 修築을 명하였고, 백성들도 감동하여 修築에 참여 하였으며, 그 결과 성의 길이가 3,370보이고 누각 이 모두 100餘間이 되었다 " 는 것이다. "이 비석은 通政大夫前行工曹參議 朴文鉉 이 찬(撰)하고 朝奉大夫前注書 李能華가 썼다" 라고 되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