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행/강원지역

2002년 마무리, 치악산( 비로봉) 산행기 (02년 12월29일)

HL5FXP (玄心) 2002. 12. 29. 15:23

 

산행일자 : 2002년 12월29일

산행지 : 강원도 원주 치악산 비로봉(1288m)

산행자 : HL5FXP 홀로

산행코스 : 제2주차장 - 구룡사 - 세렴폭포 통제소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계곡길) - 통제소 - 구룡사 - 제2주차장

 

한해를 마무리하는 산으로 저도 지난 12월29일, 치악산(비로봉, 1288m)을 다녀왔습니다..
영재, 정규, 창훈(+1)등과 김희주(9기)선배가 전주(前週)에 다녀왔다는 바로 그 치악산 비로봉.

승용차를 갖고 갔었기 시내버스 하차장소인 구룡사 매표소 입구 주차장까지 올라갔는데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라고 저 아래 제2주차장에 주차하라고.
배낭이라도 먼저 매표소 앞 가게에 맡기고 주차장으로 갈 것을 미련하게 제2주차장 까지가서 거기서부터 배낭을 메고 다시 매표소로 올라오니 벌써

10시35분.
제2주차장에서 구룡사 매표소 입구까지도 한 20여분 거리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만만치 않은 산행의 워밍업을 제대로 한 셈.

국립공원 입장료 2600원(사찰문화재 관람료 1600원 포함 - 이 경우 매번 아까운 느낌이 들지만 현실이 그러하니)
매표소에 복장 갖추고 앉아있는 특별사법경찰(국립공원 경찰)한테 사다리 병창 할 때의 병창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잘은 모르지만 병풍(屛風)

할 때의 병(屛)에 창문(窓門)할 때의 창(窓)으로 알고 있다고.  

산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간 만큼 병창(屛窓)이라는 존재가 당연 있을 만.

구룡사 입구 매표소에서 구룡사를 지나 산행의 본격 시작점인 세렴폭포 통제소까지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이지만 전일(12월28일) 초저녁부터 제법

하니 내린 눈으로 인해 꽤나 미끄러웠던 지라 꼬리가 시원찮은 나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아이젠을 하기에는 좀. 그런데

부지런을 떨어 벌써 정상들을 다녀오는지 하산 길의 산 꾼들이 여럿 보이는데 이들은 전부 아이젠을 하고 있다.


어쨌거나 세렴폭포 통제소 도착하니 시각은 어느 덧 1100시 땡땡.

통제소 입구 경고판이 오늘의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경고판 내용인 즉은 치악산 비로봉은 산세가 험해 왕복에 6시간~12시간(?)이 걸리는 만큼 동계(冬季)에는 산악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1300시부터는

입산을 통제 하노라.

통제소 앞 철다리를 건너니 예전(80년대 초반)에는 볼 수 없었던 나무 계단이 보인다.
바로 사다리 병창 코스의 첫 관문인 셈인데 이 계단이 대충 520여개.
여기서 나무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바로 빠지면 비로봉 계곡 코스가 되는데 보통 등산은 사다리병창 코스로, 하산은 계곡 길로 하는 게 일반적

인지라 나도 사다리 병창을 선택.

나무 계단에는 어디 할 것 없이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데 가운데 부근은 선행자(先行者)들이 이미 밟고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나, 좌우는 적설량(積雪量)의 가늠이 가능할 정도로 그대로 인지라 눈대중 해 보니 적어도 삼십 센티미터는 족히 되 보인다.  

자,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해야겠지.

제2주차장부터 세렴폭포 통제소까지 이미 1시간 정도를 걸은 셈인지라 워밍업이 지나쳤나  나무 계단, 기껏 오십여 개나 올랐나 싶은데 벌써 다리가

후들 한다.
한번에 치고 올라가기는 틀린 것 같고 중간에 한번 쉬어야겠다 싶은데 저 앞에 계단의 끝이 보인다.
욕심 한번 내봐 그러다 내가 나를 알지 싶어 선채로 잠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발길을..

땀은 쏟아지고 힘도 들지만 온통 눈밭인지라 잠깐 다리쉼을 하려고 해도 마땅하니 앉을데도 없고 명확히 코스를 모르는 입장에서는 길을 잘 아는

선행자들이 러셀(Russel)을 한 자국을 따라가는 게 고작인데 이러다 보니 산길도 기껏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만 열려(?) 있는지라 힘들다고 아무

곳에서나 서 있으면 가는 사람 오는 사람한테 결례가 될 판이다.

여하간 그렇게 저렇게 부지런히 발걸음을 떼고 있는데 휴대전화기가 삑삑거린다.
오늘, 나의 치악 산행을 아는 우리 친구가 보내온 격려 메시지다.
전화기에 표시되는 시계를 보니 12시40분.  
세렴폭포 통제소를 출발한지 1시간 40분 된 셈이다.
마침 약간의 공간 여유도 있고 해서 한쪽으로 비켜나 전화에 표시된 번호로 응답을 하니 내 거친 숨결이 그대로 전달되는지 그렇게 숨이 차냐고

물어온다.  이건,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도 아니고 백문이 불여일행(百聞이 不如一行)

대충 팔백고지는 넘어선 듯 싶은데 갑자기 짧지 않은 능선이 이어진다.
모처럼의 평지(?)라 숨고르기 딱 이다.
그런데 그 능선 길에서 희한하게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덩치로 보아서 아직 새끼 인 모양인데 이 녀석이 내가 올라가는 것을 못 보았는지 계속 내 진행방향으로 오다가는 나하고의 거리가 불과 3~4미터

되는 거리에서 딱 멈추어 서서는 빤히 나를 쳐다본다.
어,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싶어 나도 서서 같이 쳐다보니 본의 아닌 눈(眼)싸움이 되 버렸다.


눈싸움 이라?
동작을 깬 건 내가 먼저였다.
눈(雪)을 뭉쳐 한 방 먹이려고 동작을 취하니 이 녀석 그새 눈치 챘나 얼른 자기가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그렇다고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그저 종종 걸음인데 그 걷는 모양새가 꼭 맨발이 눈에 시려서 한발 한발 억지로 떼는 그런 자세이다.
그렇게 둘이 사이좋게 한 십여 미터 쫒고 쫒기다 녀석이 비겁(?)하게 길옆의 덤불로 들어가는 가 싶더니 금방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민가에 키우던 집 고양이가 야생화 되서 산에서 번식을 했나보다.
서울 남산도 이런 야생화 된 고양이들 때문에 작은 짐승들이 남아나지 않는다더니 남산에 비해서는 첩첩산중인 치악산에도 이런 고양이가 있을 줄이야.


치악의 상징, 꿩이 남아나겠나 싶다.

치악산 비로봉을 다녀간 사람들이 이미 여럿인지라 새삼스럽지만 해발 1288m가 장난이 아니다.
대충 요 봉우리 넘으면 정상이겠지 싶은데 돌아서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저거 올라서면 끝이겠지 싶은데 여전히 앞에는 올라가야 할 곳이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 지 두 시간이 훨씬 넘었던지라 슬슬 시장기가 도는데 그렇다고 정상도 못 밟고 밥 챙겼다가는 죽도 밥도..그러니 그저 오르고

또 오를 수 밖에.
그렇게 오르고 올라 비로봉 도착하니 14시05분.
세렴폭포 통제소로부터 약 세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정상 약 백여 미터 남겨 놓은 지점부터는 주변에 바람막이 할 곳이 없어서 인가 바람이 새차 길래 귀를 가릴 수 있는 모자도 뒤 짚어 쓰고 방풍 쟈켓도

꺼내 입고했는데 땀을 워낙 많이 흘리는 체질의 나인지라 찬 바람이 파고드니 몸이 덜덜 떨린다.    

가져간 컵 라면에 얼른 물부터 붓고, 한편으로 별도로 준비한 보온병에서 더운 물(둥굴레 차)을 마시니 그제 서야 한기가 조금 가신다.

마지막 라면 국물 한 방울까지 털어 넣은 후 하산 준비를 시작하는데 도중에 밧줄을 잡고 올라오는 길이 있어 길을 양보 받았던 한 노부부(老夫婦)가

막 도착해서는 사진을 찍으면서 셔터 좀 눌러달란다.
덕분에 나도 내 카메라에 비로봉 정상 사진하나 남길 수 있게 되었다.

하산은 계곡 길(코스)로,
처음에는 나도 영재 팀이 갔었다는 입석대 - 황골 쪽으로 내려 갈까하다 아무래도 차를 놓고 온 곳이 구룡사 방향인지라 그냥 계곡 코스를 선택.

계곡 코스는 사다리병창 코스에 비해 인공 계단이 전혀 없다시피 한지라(하산 길 초입에 두 개정도 있음)경사 급한 길을 그저 뛰다시피 미끄러지듯

내려오면 됐는데 앞 뒤 사람 하나 없이 눈 속에 나 있는 길을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보니 어느 덧 사다리병창 코스 나무계단 입구.
세렴폭포 통제소에서 시계를 보니 16시10분.
얼추 두 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이제부터 지루하니 평지를 걸어 저 산 아래 제2주차장까지 가려니 한심한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별 수 있나 가야지.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평지임에도 아이젠을 벗기가 싫다.
우선 아무래도 다리가 산행을 시작하기 전 보다는 많이 무거워졌기 올라 갈 때 보다 보폭도 작아지고 내 딛는 힘도 그렇다.
이 상태에서 아이젠 없이 걸으면 각현이 꼬리 또 다시 설상가상(雪上加霜)평지를 걸으면서 몸이 식다보니 감기 기운이 와 차에 도착할 무렵에는

콧물이 앞을 가린다.
  
차를 안 갖고 왔다면 당연 술 한잔 걸치면서 컨디션을 조정 했을 텐데.
차에 와서 대충 따져보니 여섯 시간 하고도 삼십분 정도 걸은 셈이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상대적 장거리 산행을 혼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간 우리 “올라가줌” 친구들 덕분에 새삼 산을 다시 다니게

되어 비축(?)된 체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올라가줌 친구들, 새해에도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산에서 다시 만나자.

HL5FXP 2003/06/18

原州 元氏들의 영원한 마음에 고향 雉岳山

HL5FXP 2004/11/23

사다리 병창 할 때의 병창 나중에 알고보니,
병풍(屛風)할 때의 병(屛)에 창문(窓門) 할 때의 창(窓)이 아니고
벼랑(절벽)의 강원도 방언 이라고 합니다.
매표소에 있는 국립공원 경찰이 엉터리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