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행/서울.경기지역

관악산(과천-밀영사지-영주암-연주대-514봉-자운암-서울대) 03년7월13일

HL5FXP (玄心) 2003. 7. 13. 00:49

산행일자 : 2003년 7월13일(日)
-,2003년도 제22차 산행(3월09일 이래 연속 19주차 산행)

산행지 : 관악산(해발 632m/629로 표시된 지도도 있음)

산행 참석자 : HL5FXP 외  고교동기 산악회 "올라가줌" 산악회원 14명

 

산행 시간 : 4시간20분
(시각대별 행선지)
09시50분 : 집결지(지하철 4호선 정부청사역) 출발
10시22분 : 등산로 입구 도착
10시30분 : 본격 산행 시작
10시55분 : 최초 휴식(오이와 고추장으로 간식을)
12시03분 : 연주암(戀主庵)도착
12시15분 : 점심식사(~ 13시10분 까지)
13시27분 : 관악산 정상 연주대(戀主臺)도착
13시35분 : 헬기장
13시57분 : 514봉(?)/태극기 게양된 봉우리
14시50분 : 하산 완료(자운암 경유 서울대 구내)
15시45분 : 뒷풀이 장소(신림동 순대촌)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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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
연주암은 상당히 큰 절이던데 왜 戀主寺라 안하고 戀主庵 이라할까?
그리고 정상부를 왜 戀主臺라 하는지 궁금해서 좀 뒤져보았더니 아래와 같이 나온다.


연주대[戀主臺]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에 있는 연주봉(戀主峯:629m) 절벽 위의 절.

지정번호 : 경기기념물 제20호
지정연도 : 1973년 7월 10일
소재지 : 경기 과천시 중앙동 산 12-4
시대 : 신라시대

1973년 7월 10일 경기도기념물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보광사에서 소유하고 있다.
관악산 최고봉인 연주봉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절벽이 솟아 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약간의 석축을

쌓아 올린 곳에 연주대가 있다. 신라시대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관악사(冠岳寺:지금의 연주암) 창건과

함께 세워 의상대(義湘臺)라 이름 붙이고, 이곳에서 좌선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후 조선 1392년(태조 1)에 중건하였다.

연주대란 이름은 조선 초에 개칭한 것으로, 태조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뒤 고려의 충신인 강득룡(康得龍)·

서견(徐甄)·남을진(南乙珍) 등의 유신(遺臣)들이 이곳에서 멀리 송경(松京:개경) 쪽을 바라보며 두문동(杜門洞)에서

순국한 72인의 충신열사와 망국 고려를 연모하며 통탄하였다 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태종이 셋째 왕자 충녕대군을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대군과

둘째 효령대군이 왕궁을 빠져 나와 발길 닿는 대로 방랑의 길을 떠나 이산 저산을 헤매다가 며칠 만에 문득 발을 멈춘 곳이

관악산이었다.

그들은 관악사에 들어가 입산수도하면서 왕좌에 대한 집요한 미련과 동경하는 마음을 누를 길 없어 관악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러나 왕좌에 대한 미련으로 발길은 언제나 왕궁이 바라다보이는 산정으로 향하였으며,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 그리하여 관악사의 이름도 어느덧 연주암으로 바뀌게 되었다.
(출처 : 두산백과사전)

HL5FXP 2003/07/15

소시적(?)수 도 없이 갔었던 관악산.
작년 여름 육봉 코스에 이어 오랬만에 연주암 - 연주대로 올라보니 옛 생각이 절로.
예전 기상대 레이더 돔이 있던 자리는 특정 시설물과 인원이 상주하고 있었고, 연주암에는 왠 공사가 그리 많은지

아예 "포클레인"과 트럭을 헬기로 공수 해와 산길을 누비게 하고 있던데 그건 좀 심하다는 느낌.